곽용태 효자병원 진료부장 / 신경과
"나 지금 되게 신나"
이 대사는 최근 최고 인기를 얻고 방영 중인 넷플릭스 드라마 '더글로리'에서 동은(송혜교 분)이 연진(임지연 분)에게 하는 대사입니다. 이 드라마는 제가 글을 쓰는 현재는 중간까지만 방영되었고 나머지 부분은 조만간 방영한다고 합니다. 중간까지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과거 학교에서 폭력에 시달리던 사람이 성장해 폭력을 행사한 사람에게 복수한다는 어쩌면 뻔한 내용입니다. 지금까지 방영된 내용은 매우 우울하고 어둡습니다. 힘들고, 숨고 싶고, 감추고 싶고, 죽고 싶고. 쉽게 말하면 동은의 입장에서 흑역사입니다.
역사에도 이러한 흑역사가 있습니다. 역사학자들이 말하는 대표적인 흑역사, 즉 암흑시대는 고대 그리스의 암흑시대와 서로마 제국 붕괴 이후 서유럽의 중세 초기로 두 번 있었습니다. 그리스에서는 기원전 11세기부터 기원전 8세기경까지이고 유럽에서는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5세기부터 중세 초인 10세기 중반까지를 말합니다. 역사에서의 암흑시대는 문화가 사라진 시대를 일컫습니다. 문화가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이 시기가 전쟁으로 살기 힘들거나 경제적으로 힘들어 모두 굶어서 살기 아주 어려운 시대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즉, '암흑'이라는 단어가 붙은 가장 큰 이유는 당시의 시대가 매우 암울하였다기보다는 기록이 없어져서 당시에 대해 연구하기가 매우 힘든 시기라는 것입니다(특히 고대 그리스 경우). 고고학 발굴로 어느 정도 시대상을 추정할 수 있지만 상세한 연대기가 없기 때문에 학자들의 입장에서는 눈앞이 깜깜한 것이지요. 또 다른 이유로는 특히 유럽에서 중세를 암흑시대라고 지칭하게 된 이유는 "고대와 근대는 좋은 거고, 그 사이는 나쁜 거다. 특히 중세는 아주 나쁘다"라는 근대 계몽주의 관점의 편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중세란 눈부시게 발전했던 이전 시대와 이후 다시 문명이 발전하고 있는 지금이 아닌 그사이의 가난하고 미개한 어느 시대라는 뜻 정도입니다. 그야말로 흑역사이지요. 즉 암흑시대라는 용어는 역사적인 사실보다는 무지와 편견으로 생겨난 것입니다.
알츠하이머병 치매 치료제 개발에도 암흑시대라고 생각되는 시기가 있습니다. 1993년 알츠하이머병 치료 약제로 타크린이 처음 승인받은 이후 2003년 메만틴까지 숨 가쁘게 새로운 치료 약제들이 개발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치매를 전문으로 하는 저와 같은 의사들뿐 아니라 일반인들조차 곧 치매가 정복될 것 같이 들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 이후 최근까지 거의 20년 동안 새로운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개발이 없어 의사나 환자 모두 답답하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환자들에게는 절망적인 시기이며, 외부에서 보면 마치 모든 것이 정지된 암흑시대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지와 편견을 벗기면 이 시기가 정지된 암흑시대는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아서 우울하지만 말입니다.
지금까지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는 순수한 증상 치료이었습니다. 즉 어떤 알지 못하는 원인에 의하여 인지기능과 관련된 콜린 신경계의 일부 손상이 있고 이 콜린 신경계의 손상을 만회할 만큼 콜린의 양을 늘려주면 손상된 신경이 작동하는 것이지요. 자동차로 말하면 어떤 원인에 의해서 엔진오일이 조금씩 샐 때는 새는 곳을 막지 않아도 빠진 오일만 보충하면 어느 정도 기능을 회복하거나 유지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지요. 하지만 오일 새는 곳을 정확히 모르고 새는 곳이 점점 커지거나 여러 다른 부위로도 계속 진행한다면 오일 보충은 한계가 있고 결국 자동차는 멈추게 됩니다. 과학자들은 기존 약제들의 한계를 깨닫고 점차 알츠하이머병의 근본 원인을 찾아 이를 교정하는 방향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이는 오일 보충이 아닌, 오일이 새는 곳을 막거나 오일 새는 원인을 찾아 제거하거나 완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질병경과변형 치료제(disease-modifying therapies; DMT)라고 합니다. 알츠하이머병에서 이것이 가능하려면 이 병의 원인을 알거나 알지 못하더라도 이 병의 진행 과정 중에 아주 중요한 병태생리를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당뇨병으로 시력을 완전 상실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요즘은 당뇨병의 원인은 정확히 모르지만, 시신경 손상의 병태생리를 알고 이를 치료하여 치명적인 합병증인 시력손실을 피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를 부검하면 특징적인 병변인 신경반(neuritic plaque)과 신경섬유다발(neurofibrillary tangle) 등이 관찰되는데, 신경반을 이루는 물질이 베타 아밀로이드(beta-amyloid)라는 이상 단백질이고, 신경섬유다발을 이루는 물질이 과인산화된 타우 단백질(tau protein)입니다. 게다가, 이들을 이용하여 실험실 실험이나 동물 실험을 하면 알츠하이머병과 비슷한 증상을 재현할 수 있습니다. 이상 증상(치매)을 보이는 사람의 이상 기관(뇌)에서 이상 물질(베타아밀로이드나 타우 단백질)을 발견하고 이것을 실험실에서 재현하였다면, 이 이상 물질이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이겠지요. 일견 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드디어 인간은 지구상에 태어난 후 처음으로 대표적인 퇴행성 질환인 알츠하이머병의 진행을 변경시킬 수 있는 약을 개발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됩니다.
이러한 병태생리 원인에 대한 가설에 따라서 알츠하이머병의 원인 물질이라고 생각되는 베타아밀로이드나 타우단백질과 같은 이상 단백질을 제거할 물질을 개발하려는 연구들이 넘쳐나게 됩니다. 한 연구에 의하면 2004년에서 2021년까지 알츠하이머 치료제 연구는 총 2,695건이 진행되었으며, 이 중 543건이 2상과 3상 임상시험 연구 단계로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비용이 얼마인지 최근 유행인 chat GPT에게 물어보니 1상 임상 연구에 10-30백만 달러, 2상 임상 연구에는 30-100백만 달러, 3상 임상연구에는 5억 달러 이상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이런 어마어마한 연구들이 많이 시행되었다는 것이 일반인에게는 “그냥 많은 사람이나 기업이 열심히 연구했구나”라고 생각만 할 수도 있지만 저의 경우에는 많은 회사의 피 냄새? 가 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일견 황금알을 낳는 거위같이 보이는 이 시장에는 수많은 바이오 공룡 회사들이 도전했지만, 대부분 처참한 결과를 받았습니다. 세계 1위 매출을 보이는 화이자와 같은 회사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는 치매약 개발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한때는 우리나라 어느 회사보다도 큰 엑소반트 같은 회사는 몰락하기도 합니다. 황금이 보이는 건너편은 잘 보이지 않는 대신에 가는 길에는 시체만 그득한 것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많은 실패는 단지 실패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연구자들은 끊임없이 우리가 알츠하이머병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깊이 성찰하며 반성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기초 연구가 활발해지고 새로운 가설을 만들어 이를 검증해 나갑니다.
역사나 신화에서 암흑기, 그리고 개인에게서 흑역사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무의미한 기간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의 암흑기에 그리스 사람들은 그리스 문자를 정착시키면서 기원전 8세기 중엽 호메로스로 대표되는 기록들이 다시 등장하며 다양한 문화가 폭발적 생겨났습니다. 유럽의 암흑시대인 중세 시대도 로마 문명이 붕괴하고 모든 것이 파괴된 문화의 공백기로 보이지만 이 시기는 새로운 기독교 문명이 게르만족과 같은 이 민족과 융합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찾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이 시기를 자양분으로 르네상스라는 또 다른 문화혁명이 일어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2003년 이후 최근까지 알츠하이머병 치매의 새로운 약제가 개발되지 않았다고 해서 이 시기가 암흑시대이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약물 연구뿐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기초연구들이 진행되었고,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드라마 ‘더글로리’에서 동은이 겪는 고통스러운 시간과 이와 연결해서 일어나는 시간은 단지 지워내야만 하는 의미 없이 정지한 흑역사가 아닙니다. 드라마에서도 힘들지만 동은은 조금씩 어떤 목표를 향해서 성장해갑니다. 물론 그 목표가 선한지 악한지 또는 다른 무엇인지는 드라마가 끝나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이 드라마 제목 ‘더글로리'는 나팔꽃을 의미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영광'을 뜻합니다. 흑역사나 암흑시대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이러한 어둠과 괴로움을 극복한 후에 오는 황금기, 즉 '영광'이 더욱 의미 있는 것입니다.
2003년 이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2021년 6월 7일 미국 FDA는 바이오젠/일본 에자이사에서 개발된 아두카누맙(Aducanumab)을 알츠하이머병 질병경과변형 치료제로서 신속 심사(Priority review)로 조건부 승인하였습니다. 이 약은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었지만 어쨌든, 조건부라는 족쇄를 달고 상업적 시장에 진입한 것입니다. 2023년 1월 6일 미국 FDA는 두 번째 신약인 레카네맙을 또한 신속 심사로 조건부 승인하였습니다. 이 약은 2년 전 아두카누맙의 단점을 보완한 것으로 의사인 저 조차도 새로운 이 약물에 대해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아직 암흑시대에 있을까요, 이미 황금기에 있을까요, 또 아니면 양쪽 어디 지평선(horizon)에 있을까요? 다른 의미이지만…
"나 지금 되게 신나" 네요.
저작권자 : © 디멘시아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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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용태 효자병원 진료부장 / 신경과
"나 지금 되게 신나"
이 대사는 최근 최고 인기를 얻고 방영 중인 넷플릭스 드라마 '더글로리'에서 동은(송혜교 분)이 연진(임지연 분)에게 하는 대사입니다. 이 드라마는 제가 글을 쓰는 현재는 중간까지만 방영되었고 나머지 부분은 조만간 방영한다고 합니다. 중간까지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과거 학교에서 폭력에 시달리던 사람이 성장해 폭력을 행사한 사람에게 복수한다는 어쩌면 뻔한 내용입니다. 지금까지 방영된 내용은 매우 우울하고 어둡습니다. 힘들고, 숨고 싶고, 감추고 싶고, 죽고 싶고. 쉽게 말하면 동은의 입장에서 흑역사입니다.
역사에도 이러한 흑역사가 있습니다. 역사학자들이 말하는 대표적인 흑역사, 즉 암흑시대는 고대 그리스의 암흑시대와 서로마 제국 붕괴 이후 서유럽의 중세 초기로 두 번 있었습니다. 그리스에서는 기원전 11세기부터 기원전 8세기경까지이고 유럽에서는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5세기부터 중세 초인 10세기 중반까지를 말합니다. 역사에서의 암흑시대는 문화가 사라진 시대를 일컫습니다. 문화가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이 시기가 전쟁으로 살기 힘들거나 경제적으로 힘들어 모두 굶어서 살기 아주 어려운 시대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즉, '암흑'이라는 단어가 붙은 가장 큰 이유는 당시의 시대가 매우 암울하였다기보다는 기록이 없어져서 당시에 대해 연구하기가 매우 힘든 시기라는 것입니다(특히 고대 그리스 경우). 고고학 발굴로 어느 정도 시대상을 추정할 수 있지만 상세한 연대기가 없기 때문에 학자들의 입장에서는 눈앞이 깜깜한 것이지요. 또 다른 이유로는 특히 유럽에서 중세를 암흑시대라고 지칭하게 된 이유는 "고대와 근대는 좋은 거고, 그 사이는 나쁜 거다. 특히 중세는 아주 나쁘다"라는 근대 계몽주의 관점의 편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중세란 눈부시게 발전했던 이전 시대와 이후 다시 문명이 발전하고 있는 지금이 아닌 그사이의 가난하고 미개한 어느 시대라는 뜻 정도입니다. 그야말로 흑역사이지요. 즉 암흑시대라는 용어는 역사적인 사실보다는 무지와 편견으로 생겨난 것입니다.
알츠하이머병 치매 치료제 개발에도 암흑시대라고 생각되는 시기가 있습니다. 1993년 알츠하이머병 치료 약제로 타크린이 처음 승인받은 이후 2003년 메만틴까지 숨 가쁘게 새로운 치료 약제들이 개발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치매를 전문으로 하는 저와 같은 의사들뿐 아니라 일반인들조차 곧 치매가 정복될 것 같이 들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 이후 최근까지 거의 20년 동안 새로운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개발이 없어 의사나 환자 모두 답답하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환자들에게는 절망적인 시기이며, 외부에서 보면 마치 모든 것이 정지된 암흑시대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지와 편견을 벗기면 이 시기가 정지된 암흑시대는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아서 우울하지만 말입니다.
지금까지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는 순수한 증상 치료이었습니다. 즉 어떤 알지 못하는 원인에 의하여 인지기능과 관련된 콜린 신경계의 일부 손상이 있고 이 콜린 신경계의 손상을 만회할 만큼 콜린의 양을 늘려주면 손상된 신경이 작동하는 것이지요. 자동차로 말하면 어떤 원인에 의해서 엔진오일이 조금씩 샐 때는 새는 곳을 막지 않아도 빠진 오일만 보충하면 어느 정도 기능을 회복하거나 유지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지요. 하지만 오일 새는 곳을 정확히 모르고 새는 곳이 점점 커지거나 여러 다른 부위로도 계속 진행한다면 오일 보충은 한계가 있고 결국 자동차는 멈추게 됩니다. 과학자들은 기존 약제들의 한계를 깨닫고 점차 알츠하이머병의 근본 원인을 찾아 이를 교정하는 방향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이는 오일 보충이 아닌, 오일이 새는 곳을 막거나 오일 새는 원인을 찾아 제거하거나 완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질병경과변형 치료제(disease-modifying therapies; DMT)라고 합니다. 알츠하이머병에서 이것이 가능하려면 이 병의 원인을 알거나 알지 못하더라도 이 병의 진행 과정 중에 아주 중요한 병태생리를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당뇨병으로 시력을 완전 상실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요즘은 당뇨병의 원인은 정확히 모르지만, 시신경 손상의 병태생리를 알고 이를 치료하여 치명적인 합병증인 시력손실을 피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를 부검하면 특징적인 병변인 신경반(neuritic plaque)과 신경섬유다발(neurofibrillary tangle) 등이 관찰되는데, 신경반을 이루는 물질이 베타 아밀로이드(beta-amyloid)라는 이상 단백질이고, 신경섬유다발을 이루는 물질이 과인산화된 타우 단백질(tau protein)입니다. 게다가, 이들을 이용하여 실험실 실험이나 동물 실험을 하면 알츠하이머병과 비슷한 증상을 재현할 수 있습니다. 이상 증상(치매)을 보이는 사람의 이상 기관(뇌)에서 이상 물질(베타아밀로이드나 타우 단백질)을 발견하고 이것을 실험실에서 재현하였다면, 이 이상 물질이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이겠지요. 일견 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드디어 인간은 지구상에 태어난 후 처음으로 대표적인 퇴행성 질환인 알츠하이머병의 진행을 변경시킬 수 있는 약을 개발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됩니다.
이러한 병태생리 원인에 대한 가설에 따라서 알츠하이머병의 원인 물질이라고 생각되는 베타아밀로이드나 타우단백질과 같은 이상 단백질을 제거할 물질을 개발하려는 연구들이 넘쳐나게 됩니다. 한 연구에 의하면 2004년에서 2021년까지 알츠하이머 치료제 연구는 총 2,695건이 진행되었으며, 이 중 543건이 2상과 3상 임상시험 연구 단계로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비용이 얼마인지 최근 유행인 chat GPT에게 물어보니 1상 임상 연구에 10-30백만 달러, 2상 임상 연구에는 30-100백만 달러, 3상 임상연구에는 5억 달러 이상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이런 어마어마한 연구들이 많이 시행되었다는 것이 일반인에게는 “그냥 많은 사람이나 기업이 열심히 연구했구나”라고 생각만 할 수도 있지만 저의 경우에는 많은 회사의 피 냄새? 가 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일견 황금알을 낳는 거위같이 보이는 이 시장에는 수많은 바이오 공룡 회사들이 도전했지만, 대부분 처참한 결과를 받았습니다. 세계 1위 매출을 보이는 화이자와 같은 회사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는 치매약 개발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한때는 우리나라 어느 회사보다도 큰 엑소반트 같은 회사는 몰락하기도 합니다. 황금이 보이는 건너편은 잘 보이지 않는 대신에 가는 길에는 시체만 그득한 것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많은 실패는 단지 실패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연구자들은 끊임없이 우리가 알츠하이머병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깊이 성찰하며 반성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기초 연구가 활발해지고 새로운 가설을 만들어 이를 검증해 나갑니다.
역사나 신화에서 암흑기, 그리고 개인에게서 흑역사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무의미한 기간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의 암흑기에 그리스 사람들은 그리스 문자를 정착시키면서 기원전 8세기 중엽 호메로스로 대표되는 기록들이 다시 등장하며 다양한 문화가 폭발적 생겨났습니다. 유럽의 암흑시대인 중세 시대도 로마 문명이 붕괴하고 모든 것이 파괴된 문화의 공백기로 보이지만 이 시기는 새로운 기독교 문명이 게르만족과 같은 이 민족과 융합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찾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이 시기를 자양분으로 르네상스라는 또 다른 문화혁명이 일어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2003년 이후 최근까지 알츠하이머병 치매의 새로운 약제가 개발되지 않았다고 해서 이 시기가 암흑시대이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약물 연구뿐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기초연구들이 진행되었고,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드라마 ‘더글로리’에서 동은이 겪는 고통스러운 시간과 이와 연결해서 일어나는 시간은 단지 지워내야만 하는 의미 없이 정지한 흑역사가 아닙니다. 드라마에서도 힘들지만 동은은 조금씩 어떤 목표를 향해서 성장해갑니다. 물론 그 목표가 선한지 악한지 또는 다른 무엇인지는 드라마가 끝나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이 드라마 제목 ‘더글로리'는 나팔꽃을 의미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영광'을 뜻합니다. 흑역사나 암흑시대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이러한 어둠과 괴로움을 극복한 후에 오는 황금기, 즉 '영광'이 더욱 의미 있는 것입니다.
2003년 이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2021년 6월 7일 미국 FDA는 바이오젠/일본 에자이사에서 개발된 아두카누맙(Aducanumab)을 알츠하이머병 질병경과변형 치료제로서 신속 심사(Priority review)로 조건부 승인하였습니다. 이 약은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었지만 어쨌든, 조건부라는 족쇄를 달고 상업적 시장에 진입한 것입니다. 2023년 1월 6일 미국 FDA는 두 번째 신약인 레카네맙을 또한 신속 심사로 조건부 승인하였습니다. 이 약은 2년 전 아두카누맙의 단점을 보완한 것으로 의사인 저 조차도 새로운 이 약물에 대해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아직 암흑시대에 있을까요, 이미 황금기에 있을까요, 또 아니면 양쪽 어디 지평선(horizon)에 있을까요? 다른 의미이지만…
"나 지금 되게 신나" 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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