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칼럼[곽용태 칼럼] 소라게의 추억 (2023.03.06)

효자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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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용태 효자병원 진료부장 / 신경과



"사각사각" "사각사각" 깊게 잠든 밤, 평소에는 들리지 않았던 작은 저음의 소리가 내 귀에 선명하게 들렸습니다. 처음에는 무시하려 했지만, 궁금증이 생겨서 불을 켜지 않고 조용히 그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봤습니다. 소리 나는 곳에 다가가자, 순간적으로 소리는 멈췄지만, 결국 그 소리의 주인공을 찾았습니다. 눈물이 나왔습니다. 바로 이틀 전에 항상 같이 다니던 집(소라고동)을 버리고 사육장 틈으로 탈출했던 우리 소라게를 찾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전에도 몇 번 잠깐 나갔다 온 적은 있었지만, 항상 금방 제자리에 오거나 근처에 있어서 쉽게 찾아 보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온 식구가 찾아봤지만 어디로 갔는지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그 소라게가 소라 고동도 없이 맨몸으로 제 책상 아래 전기줄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소라게를 다시 조심스럽게 사육장 안으로 넣었습니다. 소라게도 자기 집으로 돌아와서인지 훨씬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제 세상은 평화로워진 것 같습니다. 우리 식구들은 더 이상 소라게가 탈출하지 못하게 사육장을 손봐서 잘 관리하였습니다. 그러나 소라게가 안정되어 보이는 것도 잠시였고, 소라게는 예전과 달리 행동하였습니다. 이전에는 주인을 알아보아서 먹이를 주면 아는 척도 했는데, 이제는 안하고 먹이를 주어도 잘 안먹고, 툭하면 자기 소라집을 팽개치고 껍데기도 없이 사육장 안을 맴돕니다. 심지어는 아주 가까이 있는 자기 소라집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이상한 행동을 하며 시름시름 앓던 소라게는 결국 그 해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입양 2년 차였습니다.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이 베타아밀로이드라는 이상 단백질 때문이라는 가설이 대세가 되자, 이 단백질을 뇌에서 제거하면 병이 근본적으로 치료가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수많은 물질들이 개발되었고 임상 실험까지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실제 치료제까지 이르지 못하고 실패했습니다. 왜 대부분의 치료 후보물질이 실패했을까요? 물론 당연히 실패의 첫번째 원인은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이유는 이 임상 실험을 하면서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알츠하이머병 임상 실험에 도전한 치료 후보물질들은 대부분 우리가 기대했던 대로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을 거의 완벽하게 혹은 상당 부분 제거했습니다. 예를 들어 베타아밀로이드 생성에 관여하는 베타세크레타제를 억제하는 베루베세스타트(verubecestat)나 단클론항체인 솔라네주맙(solanezumab)은 뇌에서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상당히 감소시켰지만, 임상적으로 효과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위약군보다 오히려 인지 기능이 더 떨어지는 예상치 못한 결과가 있었습니다. 또 다른 임상 실험에서는 어떤 경우에는 암 발생이 증가하기도 했고, 뇌염이 생기기도 하며, 심지어는 사망률이 증가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물질 중에서 단클론항체는 비교적 부작용이 적지만, 이 계통의 물질들은 아주 특이한 부작용인 아밀로이드연관영상이상(amyloid-related imaging abnormalities;ARIA)이 자주 나타납니다. ARIA는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 제거에 사용되는 약물 때문에 생기는 뇌의 부작용입니다. 이 증상은 크게 뇌의 부종으로 나타나는 ARIA-E 와 뇌의 출혈로 나타나는 ARIA-H가 있습니다. 의학 연구에서는 기능획득(gain of function)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바이러스나 다른 생물체의 유전자나 단백질을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새로운 기능이나 강한 기능을 발휘하도록 만드는 실험적인 기술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원하지는 않았지만 치매 약을 연구하면서 일종의 독성 기능획득(toxic gain of function) 혹은 기능 손실(loss of function) 연구를 하게 된 것입니다. 즉, 이런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인위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왜 이런 부작용이 나타났는지,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베타아밀로이드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에 봉착하게 된 것입니다.

"나는 무엇인가"라고 물어볼 때,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두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첫 번째는 "내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과는 어떤 관계인가"와 같은 횡적 연관 관계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나의 아버지는 누구이며 그의 아버지는 누구인가"를 찾아가는 종적인 관계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은 언제부터 등장했을까요? 유전학 연구에 따르면, 이 단백질은 8억 년 전 다세포 생물이 발생하기 시작한 시기부터 존재했다고 합니다. 이는 절지동물이 분화되기 전부터 나타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은 모든 척추동물에 나타나고 척추동물이 아닌 히드라, 게와 같은 매우 다양한 생명체에서도 발견이 됩니다. 척추동물에서의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은 인간과 90% 이상 동일 하며 포유류는 이 비율이 더 높아 95% 이상 동일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생명체에서 유사성을 유지한 채 오랜 시간 동안 유지된 것은 이 단백질이 진화적 가치가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베타아밀로이드는 인간이나 생명체에게 어떤 역할을 할까요.

첫 번째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신경의 강화나 손상을 치유하는 것입니다. 처음 발생하였던 단세포 생물은 신경계라는 것이 없습니다. 다세포 생물이 나타나게 되면서 아주 간단한 반사신경계를 형성하고, 이후 점차 진화를 거치면서 더욱 복잡한 신경계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러한 신경계의 발달 과정에서,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은 신경계를 제어하거나 손상이 있는 경우 치유하고 기능 회복에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외상성 뇌 손상이 있는 경우 베타아밀로이드가 급격히 증가하며, 이는 과거에는 알츠하이머병의 위험인자로 간주되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서는 뇌손상에서 보이는 베타아밀로이드가 손상된 뇌의 회복을 돕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두 번째는 박테리아, 곰팡이, 바이러스 등과 같은 외부 물질이 우리 몸속에 들어오면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이들과 결합하여 파괴하는 항생제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세번째로는 암의 발생을 억제하거나 성장을 방해하는 역할을 합니다. 네 번째로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은 혈관의 벽이 손상되었을 경우 이를 막아 주는 역할을 합니다. 특히 뇌로 가는 혈관은 혈액뇌관문(blood-brain barrier)이라는 아주 촘촘한 장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병원균이나 독성 물질 등이 쉽게 뇌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있습니다. 알츠하이머병에서는 이 혈액뇌관문이 손상되는 경우가 많이 보고되어 이 혈액뇌관문 손상이 알츠하이머병의 원인 중 하나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은 혈액뇌관문이 손상되어 이쪽으로 구멍이 생겼을 경우 이를 응급으로 막아 주는 역할을 합니다.

자 이제 이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이 무차별적으로 제거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요? 어떤 환자는 인지 기능이 더 나빠지기도 하고, 암이나 감염병의 발생이 늘어 사망률이 높아지기도 하며, 그리고 혈관에서는 출혈이나 부종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것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신약 개발 과정에서 마주쳤던 문제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베타아밀로이드가 정확하게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 단백질이 형성되고 성장하고 제거되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그저 이 베타아밀로이드가 모여 만들어진 신경반이라는 것에만 눈길이 갔던 것이지요. 베타아밀로이드가 형성되고 발전되고 사라지는 과정에서 어떤 것은 우리 몸을 보호하고, 또 어떤 것은 임시방편으로 사용되고, 또 어떤 것은 우리 몸 자체를 파괴하기도 합니다.

베타아밀로이드의 이러한 복잡하고 미묘한 역할에 대해서 우리는 아직 잘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미국에서 신약으로 승인된 아두카누맙과 레카네맙은 같은 "-맙" 제제이지만 이전에 실패한 약과 달리 임상에서 효과가 입증되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실패와 성공을 비교하면서 거꾸로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매우 복잡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같은 물건을 가지고 가도 어떤 길에서 버려야 되고 어떤 길에는 가져가야 하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가 어떤 길에 서 있는지에 따라서 말입니다.

제가 소라게를 키운 것은 15년 전입니다. 모든 부모와 마찬가지로 철없는 아이가 문방구에서 호기심으로 이것저것 애완동물을 사오면, 몇 일 간은 수선을 떨지만 결국 키우는 것은 부모가 하게 됩니다. 어쩔 수 없이 공부할 것도 늘고 그러다 보면 정도 듭니다. 소라게를 관찰하면서 의외로 소라게가 영리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게는 누군가가 키웠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파양으로 우울해 하였지만, 정성을 들여 키우다 보니 곧 주인을 알아봅니다. 주인이 들여다보면 나와서 인사도 하고, 때가 되면 집도 바꾸거나 수리하고, 또 아주 가끔은 집을 놔두고 외출도 합니다. 그리고 가끔은 사육장에서 탈출하는 만용도 보입니다.

그래도 신기한 것은 소라게가 길을 잃지 않고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번 가출하고 돌아온 이후에는 사육장 안에서도 길을 잃기도 하고, 한자리에서 돌기도 하며, 음식도 잘 먹지 않습니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저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만 별세하고 만 것이지요. 저는 그때 그냥 슬프기만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아 우리 소라게도 치매가 생겼구나. 게도 베타아밀로이드가 나타나며 인지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소라게도 인간과 똑같이 성장하고 늙으면 치매가 나타난다고 생각하니 치매는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속성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족: 베타아밀로이드가 매우 많은 생명체에서 나타나기는 하지만 모든 종이 신경반을 형성하고 실지로 뇌 기능 손상을 가져오지는 않습니다. 종에 따른 차이는 아직 연구가 많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게에서도 실험적으로 뇌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가 있지만 실지로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현상이 생기는 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그렇게 느낀다는 것으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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